지렁이 기르기

지렁이 화분 분양기

[서리] 2009. 5. 22. 18:48

제 손을 거쳐 무수히 많은 풀들이 죽어나가면서
화분에 지렁이를 기르면 어떨까 생각을 했었습니다.
지렁이가 있으면 흙 통기성도 좋아지고
양분도 풍부해지지 않을까, 해서요.

그런데 근래에는 먹이사슬의 분해자로서
쓰레기를 처리하는 지렁이의 역할이 강조되면서
감사하게도 무료로 지렁이 화분을 나눠주더군요.
그래서 지난 화요일에 냉큼 업어왔습니다. ^^


지렁이 토분

물론 '냉큼'이라고 하는 것은 적절한 표현이 아닌 것 같습니다.
분양받기로 덜컥 약속해 놓고, 가지러 가게 되는 그 순간까지도
과연 내가 키울 수 있을 것인가 계속해서 의심했을 뿐만 아니라
(그냥 집에 가버릴까...?)

심지어는 이 화분을 가져온 날 밤에는
실처럼 가느다란 지렁이들이 옷에 막 붙어 있는 꿈도 꿨지요. 우.....


화분을 들고 지하철을 타는데,
화분이 든 가방이 무거워서 품에 안고 싶은데
괜시리 스멀스멀한 기분이 들어 팔에 힘줄이 두드러지도록 한손으로 들고 있었다지요.


첫날은 먹을 걸 주지 말라고 해서 (감사해라~ㅎ)
베란다에 두고 흙만 좀더 덮어주고,
그날 바로 악몽을 꿉니다. 그리고 이틀 후.


지렁이가 화분 밖으로 나오기는 커녕
흙 위로 올라오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,
슬슬 이 녀석들의 안부가 궁금해집니다.


윗쪽 화분을 들어낸 모습. 지렁이는 보이지 않습니다.


모종삽을 들고 흙을 살살 파헤칩니다. -_-



다행히 살아있습니다.

아직 살아있는 지렁이


물론 아직 징그럽지만 (으으으....)
안전하다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살짝 놓입니다.
더구나 토분 표면은 거칠어서
지렁이가 기어오르고싶어도 그러기 어렵다고 하네요.

이 아이들이 얼마나 오래 제 손에서 무사히 살아줄지,
과연 이들이 만든 양분 가득한 흙을
제 손으로 화분에 옮겨담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

키우고 있는 동안에는 블로그에나마 기록을 남겨 보려고 합니다.

도저히 못 키우겠으면 드넓은 땅으로 (아파트 화단..ㅎㅎ) 보내야겠지만,
그 때까지는 부디 무사해주길.